종이책의 다감각적 경험
인간 공학 과학자들은 터치에 관해 이야기할 때 촉각 경험을 이야기한다. 촉각 경험에 대한 디자인을 '햅틱(haptics)'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특히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에 촉각 경험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이 책을 읽을 때의 촉각 경험과 현시점에서의 햅틱이 적용된 전자책 혹은 태블릿을 이용하여 글을 읽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종이 책은 무게를 가지고 있으며 책마다 그 무게가 다르다. 이와 같은 물리적 무게는 그 책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체화된 인지 연구 결과, 사람들은 무거운 것을 들고 있을 때 그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전자책의 경우 모든 책이 같은 무게를 가진다. 얇은 책과 두꺼운 책에도 같은 인식이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종이 책의 페이지 수와 두께는 그 책에 대한 경험의 일부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종이의 감촉을 느낀다. 종이 책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전자책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을 요구한다. 종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 소리가 난다. 그리고 크고 딱딱한 책 표지를 덮을 때도 소리가 난다.
어떤 책들은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종이 책을 읽는 것은 촉각, 후각, 시각, 그리고 청각이 함께하는 다감각적 경험이다. 전자책 장비는 촉각과 시각을 수반하지만 모든 책이 동일하다. 전자책에는 소리가 있지만 이것은 종이책과 다르며 전자책에는 아무런 냄새가 없다. 미래에는 전자책을 통한 독서 경험이 종이 책처럼 풍부해지도록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시점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에서의 이동과 책에 대한 심적 지도
사람은 전자책에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종이 책의 책장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종이 책은 눈에 보이는 풍경과도 같다. 사람은 종이 책을 읽는 동안 그에 대한 심적 지도를 만든다. 어떤 부분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책의 물리적 속성과 결부된다. 읽었던 내용을 책에서 다시 찾을 때 "여기쯤 어디 왼쪽에 있었는데..."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억은 책에 대한 물리적 기억이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지도화된' 읽기 기억은 전자책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종이 책에는 페리스 자브르(Ferris Jabr, 2013)가 '지형(topography)'이라 부르는, 전자책에는 없는 것이 있다. 우리가 책을 열면 거기에는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가 있다.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여덟 개의 모서리가 있다. 우리는 책의 모서리나 꼭지에서 얼마만큼 떨어진 부분까지 읽었고, 특정 페이지의 어디까지 읽었으며, 책을 얼마만큼 읽었는지 알 수 있다. 자브르는 이러한 단서들이 책에서 우리가 옮겨 다니는 것을 도울 뿐만 아니라 글에 대한 심적 지도를 형성하는 것을 돕는다고 말한다.
전자책, 태블릿, 혹은 모니터를 통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러한 이동 단서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심적 지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전자기기상의 페이지들을 이동할 수는 있지만 심적 지도를 이용한 직관적 방식을 통해서는 아니다.
전자책의 제한적 이동은 이해를 방해한다.
안네 망엔(Anne Mangen, 2013)이 노르웨이에서 수행한 연구에서 읽기 능력이 유사한 10학년 학생들에게 이야기 글과 해석적인 글을 읽고 이를 학습하도록 했다. 각각의 글은 약 1,500 단어를 가지고 있었다. 절반의 학생들은 이 글을 종이를 통해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15인치 LCD 모니터상에서 PDF 파일을 통해 읽었다. 글을 읽은 후 학생들은 객관식과 단답형 질문으로 이루어진 글의 이해도를 평가하는 시험을 보았다. 시험 동안 학생들은 그 글을 참조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읽은 학생들은 종이를 이용해 읽은 학생들에 비해 낮은 점수를 얻었다.
망엔은 시험을 보는 동안 학생들이 글을 참조하는 것을 관찰했다. PDF를 이용했던 학생들은 정보를 찾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종이로 글을 읽은 학생들은 그 종이를 손에 쥐고 훨씬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면서 더 쉽게 처음, 중간, 끝 혹은 그 사이의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연구 결과, 컴퓨터로 교과서를 읽은 학생들이 종이 책으로 교과서를 읽은 학생들 만큼 정보를 오래 기억하지 못함이 밝혀졌다. '기억'과 '앎'에는 차이가 있다. 사람이 '기억'을 할 때는 특정 정보를 회상하는데, 그들은 종종 그 정보를 획득했을 때의 상황도 회상한다. -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그것을 어디서 배웠고 등등. 연구결과, 컴퓨터로 읽는 것보다 종이를 통해 읽는 것이 내용을 좀 더 완전히 배우고 그 내용을 '앎'으로 바꾸는 것을 돕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종이 책이 전자책 보다 읽기에 효과적이다.
현재까지 연구 결과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읽기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읽기 능력은 걷고 말하는 능력과 달리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뇌는 읽는 법을 배워야 하며, 읽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사람의 뇌는 변화한다. 앞에서 소개한 모든 연구들은 이미 종이책 읽기를 통해 읽는 법을 배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미 익숙한 읽기 방식과 새로운 읽기 방식에 대한 비교 평가로 진행된 것이다. 만약 태어나자마자부터 패드를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오히려 종이책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전자책의 형태가 지금과 다르게 설계되어서 다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심적 지도를 구축하기 쉬운 형태로 개선되고, 페이지 이동의 자유가 생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와 다른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의 상황에 맞는 책 형태를 선택하여 읽으면 유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종이책의 경우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분야에 활용하고, 전자책은 스토리북과 같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시켜주는 TTS 기술을 활용해 이동하면서 스토리를 소리로 듣는다면 두 매체의 특징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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